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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트렌드] 절대 권력과 절대 신앙

거리의 철학자로 알려진 에릭 호퍼(Eric Hoffer·1902~1983)는 미국의 철학자다.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않았지만 깊이 있는 통찰력의 저술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책들을 읽다 보면, 그 통찰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주로 부두 노동자와 같은 육체노동자로 살아가면서, 독학으로 철학, 역사, 문학을 공부했다.   뉴욕 브롱스에서 태어난 에릭 호퍼는 LA 지역에서도 일정 기간 활동한 이력이 있다. 그는 젊은 시절 서부를 떠돌며 여러 도시를 전전했고,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는 LA를 포함한 캘리포니아 곳곳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했다. 특히 LA 항만 지역에서 부두노동자로도 일한 경력이 있다. 호퍼는 개인의 자율성과 자유의지를 강조했으며, 이념이나 집단에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태도를 비판했다.   에릭 호퍼는 ‘맹신자들(The True Believer)’이라는 저서를 통해 대중운동에 쉽게 휘말리는 인간 심리를 날카롭게 분석했다. 그는 한 가지 공통점을 지적한다. 히틀러의 나치즘, 스탈린의 전체주의, 종교적 광신주의 등 모두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능력을 포기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호퍼가 경고한 ‘맹신자’의 모습은 단순한 열정이 아니다. 그것은 비판 없이 따르고, 자기 의지를 상실하며, 외부 권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태도이다. 문제는 이러한 심리가 신앙의 영역에도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성도들 중 일부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목회자의 말, 집단의 분위기, 전통적 습관에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를 그런 방식으로 부르지 않았다. 하나님은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로 지으셨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끊임없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묻는다(마 16:15). 이는 각자의 신앙 고백을, 자기 판단과 책임 속에서 하라는 뜻이다.   이 말씀은 맹신이 아닌, 깊은 인식과 자발적 결단에서 나오는 믿음을 보여준다. 주체적인 신앙이란, 질문하고, 고민하고, 말씀을 붙잡고 씨름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믿음은 단순한 정보 습득이나 규범의 수용이 아니라, 인격적 만남이며 삶 전체를 통째로 맡기는 깊은 결단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고 하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알면서도 여전히 신앙 안에서 불안하고 억눌리는 감정을 경험한다. 진리 안에서 자유하지 못하고, 누군가가 정해 준 ‘틀’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주체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은, 비난받더라도 질문한다.   오늘날 성도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신앙, 성경을 스스로 읽지 않는 신앙, 공동체 속에서 편안함만 찾는 신앙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든 성도는, 하나님 앞에 홀로 설 수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내가 믿는 바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고, 흔들리는 세상에서도 ‘나는 누구이고, 왜 이 길을 가는가’를 분명히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jay@jnbfoodconsulting.com 이종찬 / J&B푸드컨설팅 대표종교와 트렌드 권력 신앙 신앙 성경 신앙 공동체 신앙 고백

2025-04-07

[기독교와 사회물리학] 인간의 노동이 곧 하나님의 일

하나님은 스스로 즐겁고, 보람되게 일하시는 분이시다.     직접 우주와 지구의 생태계를 만드시고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나서 즐겁고 기뻐하셨다. 그리고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을 일구시고, 사람을 에덴동산에 두어 맡아서 돌보게 하셨다.     사람이 해야 할 '맡아서 돌보게 하는 일'의 동사는 히브리 동사 '아바드(abad)'로서 '섬기다 봉사하다(serve)'의 의미가 있다. 돌보고 섬기는 일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로서 노예의 속박이 아니라 즐겁고 가치 있는 일이다. 노동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결과가 아니라 섬기는 일이며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일이다. 선악과 때문에 생긴 불순종의 결과로 노동이 새롭게 부과된 것이 아니라 노동이 힘들어지게 되고 생존의 굴레가 되어버렸다.     앙드레 비엘레는 인간의 타락으로 노동이 죄로 오염되면서 타락 이전에 노동을 통해 누렸던 즐거움이 수고해야만 하는 고통스러운 일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노동의 즐거움과 노동이 제공하는 쉼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안식일의 의미를 재고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노동 자체는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이어가는 하나님의 일이다.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일하시는 분이기에 사람도 일하는 것이다.     인류가 공동체 사회를 이루게 되면서 다양한 노동은 서로를 생존하게 하는 연결고리가 되었다. 현대사회에서 홀로 생존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불가능하다. 현대인은 누군가의 노동으로 이루어진 자본과 생산물을 이용해야 하고 본인도 노동함으로써 공동체의 필요를 제공하며 공존한다. 노동이 다양화되면서 노동을 관리하고 책임지는 지배 군이 생겨나고 노동을 제공하는 피지배 군이 생겨나면서 노동의 보상이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성경은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줘야 함을 보여준다. 노동을 제공한 야곱은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되자 고용주인 외삼촌 라반과 갈등이 일어났으며 결국에는 안 좋게 떠나게 된다. 구약은 노동의 대가가 정당하게 지급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합당한 보수를 지급하지 않아 노동자를 억울하게 한 자를 심판하라고 가르친다.   초대교회 시대 헬라 문화는 육체와 정신을 구별하여 육체적인 노동은 인간의 품위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하고 정신적인 일을 더 존중하였다. 그래서 노예가 육체적인 일을 하게 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수고하여 제 손으로 떳떳하게 벌이를 하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궁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 있을 정도로 일을 하라고 강조한다.   중세 교회는 이분법적으로 성과 속을 엄격하게 구분하여 영적 계급과 세속 계급을 구분하고 영적 계급에 속한 교황, 주교, 수도사 등은 직업을 통한 노동을 하지 않았다. 종교개혁을 이끈 루터는 모든 직업의 일은 하나님의 일과 동등한 가치를 가지며 신앙 공동체 안에서의 일 뿐만 아니라 세속사회 속에서 직업을 갖고 행하는 모든 노동이 사회적 책무를 공동으로 지는 일이며 거룩한 소명이라고 밝힌다. 칼빈은 노동자들의 땀의 결정체로 재화가 제공되는 것은 하나님의 일에 대한 보상으로서, 노동자들의 품삯이 제공되지 않는 현상은 부당한 일이라고 일갈하였다. 그리고 노동의 비보상에 대한 심판은 노동자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앙드레 비엘레는 인간이 노동을 통해 얻은 재화는 사회구성원으로서 공동체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으로 재화를 얻기 위한 인간의 노동 자체가 하나님의 일이라고 강조하였다. 육체적 노동이든 정신적 노동이든 사람의 일은 공동체를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현대교회 안에 숨겨진 직업의 편견이 존재함을 보게 된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을 가진 이를 성공한 신앙인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노동직업을 가진 이들을 좌절하게 만들기도 한다. 교회는 모든 직업인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존경해야 한다. 교회는 헌금이나 바치는 물건의 양과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건전한 직업을 하나님의 일로써 존경해야 한다. 즐겁고 기쁘게 노동하고 성실하고 정직하게 직업에 임하며 공동체에 포함된 이웃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이 존경받는 이민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goodchul@gmail.com 조철수 / 목사·맥알렌세계선교교회기독교와 사회물리학 하나님 노동 노동 자체 공동체 사회 신앙 공동체

2023-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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